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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의 대표작 《녹스》(Nox)는 어떤 책일까요? 세상을 떠난 오빠를 추모하며 만든 특별한 작품으로, 사진과 편지, 아코디언 형태의 책에 담긴 기억과 상실의 의미를 살펴봅니다.

책이 아니라 오래된 기억 상자라면?
오랫동안 연락하지 못했던 가족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는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마지막으로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고, 오래된 편지를 다시 읽으며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하려 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너무 적다면 어떨까요?
캐나다 시인이자 고전문학 연구자인 앤 카슨(Anne Carson)의 《녹스》(Nox)는 바로 이러한 상실과 기억의 문제를 다룬 작품입니다.
2010년 출간된 《녹스》는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다가 세상을 떠난 오빠 마이클을 추모하기 위해 만든 책입니다.
일반적인 시집처럼 문장만 나열한 작품은 아닙니다. 오래된 사진과 편지, 손글씨, 그림과 번역문 등이 하나의 책 안에 담겨 있습니다.
특히 이 책은 일반적인 책의 형태와도 상당히 다릅니다.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긴 종이를 아코디언처럼 펼치면서 읽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마치 누군가가 오랫동안 간직해 온 가족의 기록 상자를 조심스럽게 열어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녹스 줄거리와 작품 속 특별한 의미
◆ 1. 오랫동안 멀어져 있던 오빠 마이클
앤 카슨에게는 마이클이라는 오빠가 있었습니다.
마이클은 젊은 시절 가족과 떨어져 살기 시작했고, 오랜 기간 고향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여러 나라를 떠돌며 생활했고, 가족과의 연락도 드물었습니다.
앤 카슨은 오빠가 어디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충분히 알지 못한 채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중 마이클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가족이었지만 가까이 지내지 못했던 사람, 많은 것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모르는 부분이 더 많았던 사람.
《녹스》는 바로 그 사람의 흔적을 다시 살펴보는 과정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이 책은 오빠의 생애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리한 전기가 아닙니다. 남겨진 기록과 기억의 조각들을 통해 한 사람의 부재를 이해하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 2. 오래된 사진과 편지에 담긴 이야기
《녹스》에는 가족사진과 오래된 편지, 손글씨, 그림, 종이 조각 등이 등장합니다.
일반적인 문학작품에서 사진이나 편지는 이야기를 보충하는 자료로 사용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그러한 자료 자체가 이야기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앤 카슨은 오빠가 남긴 흔적들을 다시 배열하면서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합니다.
오래된 편지의 문장 하나, 사진 속 표정 하나도 새로운 질문이 됩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많은 기록을 모아도 한 사람의 삶을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기억에는 언제나 빈틈이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는 작품에 담긴 기록을 살펴보면서 동시에 기록되지 못한 시간의 존재도 느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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앤 카슨의 특별한 추모 작품 《녹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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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New Directions 출판사 공식 영문 소개 페이지
◆ 3. 왜 제목이 녹스일까?
녹스(Nox)는 라틴어로 '밤'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앤 카슨은 왜 오빠를 추모하는 책에 밤이라는 제목을 붙였을까요?
밤은 빛이 사라진 시간이면서 동시에 보이지 않는 것을 상상하게 만드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작품 속에서 밤은 죽음과 상실, 그리고 더 이상 알 수 없게 된 한 사람의 삶을 떠올리게 합니다.
오빠가 가족과 떨어져 지냈던 시간은 앤 카슨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미지의 영역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녹스라는 제목은 단순히 슬픔을 의미한다기보다, 누군가에 대해 끝내 알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는 사실을 상징하는 것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남겨진 사람들은 그를 기억하려 하지만, 모든 질문에 답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 작품은 그러한 불완전한 기억까지도 추모의 일부로 받아들입니다.
◆ 4. 고대 로마 시인의 시가 등장하는 이유
《녹스》에서 특별히 주목할 부분은 고대 로마 시인 카툴루스(Catullus)의 101번 시입니다.
카툴루스는 먼 타국에서 세상을 떠난 형제를 추모하는 시를 남겼습니다.
앤 카슨은 이 시를 작품의 중요한 바탕으로 삼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시를 한꺼번에 번역해서 제시하는 대신, 라틴어 단어 하나하나의 의미를 살펴보는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오래된 문장을 해독하듯 단어의 뜻을 찾아가면서 오빠에 대한 기억도 함께 더듬어 갑니다.
고대 시인의 형제에 대한 슬픔과 현대 시인의 오빠에 대한 그리움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나는 셈입니다.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이 느끼는 상실감은 쉽게 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합니다.
녹스, 왜 특별한 책으로 기억될까?
《녹스》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책의 형태 자체가 작품의 일부라는 점입니다.
책장을 한 장씩 넘기는 대신 길게 연결된 종이를 펼쳐야 합니다.
그 과정은 마치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꺼내 보는 행동과 닮아 있습니다.
종이를 펼칠수록 새로운 기록이 등장하지만, 이미 지나간 시간을 완전히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또한 원서는 저자가 직접 만든 추모 기록물을 복제한 형태로 출간되었습니다.
이 때문에 글뿐 아니라 사진과 종이의 질감, 기록의 배치까지 작품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문학을 읽는 행위와 오래된 물건을 살펴보는 경험이 하나로 연결되는 것입니다.
《빨강의 자서전》이 사랑과 성장에 관한 이야기이고, 《남편의 아름다움》이 결혼과 배신에 관한 작품이라면, 《녹스》는 기억과 상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가족을 떠나보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 작품이 조금 다르게 다가올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떠난 후에는 함께했던 시간뿐 아니라 함께하지 못했던 순간까지 떠오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의 모든 것을 알 수 없습니다. 가까운 가족이라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기억이 완전하지 않다고 해서 그 사람을 향한 마음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녹스》가 보여주는 추모의 방식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는 것이 아니라, 되찾을 수 없는 시간까지 소중하게 간직하는 일인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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